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후백제 도성 (문단 편집) === 사서에서 === [[고려사]]에 단 한번 등장한다. 태조 세가 19년(936년) 9월에 고려 태조 왕건은 [[일리천 전투]]에서 승리한 뒤 의기양양하게 '백제도성(百濟都城)'에 들어간다.[* 고려사에선 후백제의 본궐을 백제 도성이라 칭했다.] >'''"거괴(渠魁)는 이미 빚을 갚았다. 내 적자(赤子)들을 해치지 말라."''' 여기서 거괴는 괴물의 우두머리라는 뜻이고 적자는 자신의 피붙이를 말한다. [[견신검|신검대왕]]을 '''[[황산벌]]'''에서 체포하고 백제 군대는 해체 됐으니 더 이상의 살상을 피하겠다는 의미이다. 태조는 이 명령을 내린 뒤 철저히 백제 국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니 사람들이 모두 좋아 했다고 한다.[* 그래서 그런지 견훤의 후손인 황간 견씨가 아직 남아있다.] 근데 이건 [[고려사]] 기록이고 고려사는 [[고려실록]]의 기록을 가져 온거라 실제 후백제의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알기 어렵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